<바나나 그 다음,>

◆ 함께한 플레이리스트 ◆

◆ 밑줄 문장 ◆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머릿속에 많은 것을 채워 넣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알고,

세상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일이었다.

나를 알지 못하면 결코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7p

-그래도 나는 새 집이 마음에 들었다.

이유가 참 단순했지만, 우리 방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베란다가 있어서였다.

내게 베란다는 이 모든 악조건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치유의 공간이었다.

그 거대한 베란다에는 오직 의자만 딱 두 개 있었는데,

나는 항상 이 의자에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맥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좋은 점이 더 많은가, 싦은 점이 더 많은가는 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것 하나만으로 힘든 것들을 잊고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나를 힘들게 하는 한 가지 때문에 모든 좋은 것들이

무의미해질 때도 있는 법이다. 55p

-당장 우체국으로 가서 이불로 써도 될 만한 거대한 크기의 세계 지도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매일 컨테이너 한쪽 벽에 붙여놓은 세계 지도를 쳐다보며 조금씩 꿈을 키워나갔다.

처음 세계 지도를 벽에 붙여놓을 때는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막막했지만,

큰 틀의 한 가지 조건을 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전 세계 6대륙 전부 밟아보기'

오세아니아 대륙에 있었으니 앞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북미를 거쳐

집으로 돌아가면 완벽했다.

그래서 앞으로 돈이 들어오면 무조건 비행기 표부터 사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을 하는 데 총 얼마의 경비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비행기 표만 미리 사 놓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99p

-처음에는 그저 장난스러운 생각이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텐트 치고 자는 것.

하지만 상상만 했던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나의 능성은 사실

엄청나게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 어쩌면 내가 앞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어마어마한 일을 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 202p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왔다.

도착하자마자 이곳의 명소인 뢰머 광장에도 가보았고

유럽중앙은행의 상징물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설렘이 사라졌다.

여전히 수첩에는 인터넷에서 찾아놓은 '유럽에서 꼭 가야 할 곳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웃긴 일이었다. 일상에서도 그렇게 미루던 '해야 할 일'들을

여행 와서 숙제처럼 떠안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길게 적어놓았던, 해야 할 것들의 페이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문득 브라질의 리우 예수상이 보고 싶어졌다.

해야 할 것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따르기로 했다.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남미로 향하는 비행기 일정을 앞당겼다. 246p

-여행을 통해 자츰 나를 알아가고 탐험하고 싶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언제 행복해하는지,

무엇에 감동하고 슬퍼하는지 알기 위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세상은 내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기 위해.

형체를 확인하러 다니는 이동은 이제 질렸다.

모두가 아레키파를 백색도시라 부를지언정, 내가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새로운 하늘빛에 감동하고 행복을 느끼면서도, 금세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분명 아레키파에서 내가 사랑한 것은 보라색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보라색 하늘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니 평생 그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30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