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는 작은 편이었지만, 반년 전에 노송나무를 조합해 새로 만들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쾌한 향이 났다.
나는 열심히 손을 움직이면서 욕조에 가득 미지근한 물을 담았다.
그리고 시골의 낡은 온천 숙소로 힐링 여행을 온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
목까지 욕조에 담근 채 멍하니 몇 개월간의 회색빛 나날을 회상하다가 하마터면 열이 올라 욕조에서 쓰러질 뻔했다.
목욕을 끝낸 뒤, 익숙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방으로 돌아가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렸다.
부채로 열이 오른 얼굴과 목을 부치면서 부엌에 얼굴을 내밀어보니 막 완성된 밥과 된장국 냄새가 가득해,
아침부터 제대로 뭘 먹지 못한 내 배가 마구 비틀리며 소리를 낼듯했다. 55p
-나는 젓가락을 들고 "맛있겠다."라고 말하며 바로 요리에 손을 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등을 활처럼 곧게 세운 뒤 햇볕에 탄 양손을 맞대고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이 꼭 작게 기도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 나도 황 망하게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새삼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해보았다.
생각해보면 도시에서 혼자 살 때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대충 때우듯이 먹었기 때문에,
이렇듯 손을 모으고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57p
-"즉, 에밀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전능한 존재는 유일하게 에밀리밖에 없다는 말이다.
에밀리 인생을 자유 자재로 창조할 수 있는 사람도 에밀리 본인밖에 없지."
"응, 맞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자신의 신- 이라는 거구나.
나는 작게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내 삶과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사람은 나다.